[불교칼럼] 보검스님 문화탐방 : 한국불교 법맥과 태고 보우 국사 차 이야기최 석환 거사, 중국 하무산 석옥 청공 선사와 30년 인연 이어와
불교는 인도에서 생겨났지만, 불교가 중국에 와서 화려한 꽃을 피웠다. 그래서 육당 최남선 선생은 인도 불교는 서론 불교, 중국 불교는 본론 불교, 한국불교는 ‘결론불교’라고 극찬한 바 있다.
역사상 중국 불교는 여러 종파가 명멸했지만, 당송 시대에 선종불교가 주류 불교로 정착했고, 이 전통이 나말여초에 한반도에 수용되어 9산선문이 확립됐다.
그러므로 한국불교는 선불교 전통이 주류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석권하고 있다고 하겠다.
선불교에 입각할 때, 선맥(禪脈)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태고 보우 국사가 선맥을 이어 온 석옥 청공선사가 주석하였던 중국 하무산은 너무나 의미가 깊은 회상이라고 하겠다. 이 분야에 일가견을 갖고 있고, 업적을 쌓아 온 분이 바로 최석환 거사이다.
2월 25일 보검스님은 신룡화사와 함께 월간 차의 세계 발행인 최석환 거사 사무실을 방문했다.
태고종 종정 안덕암 큰스님이 1996년 하무산을 찾았을 때, 왕소견 노인이 석옥 청공 선사와 태고보우 국사가 마셨다는 하무 차를 덕암 종정 스님께 올리고 대화를 하고 있다. 출처 월간 <차의 세계> 2월호.
최 거사는 2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교토에서 열리는 ‘28차 선차아회’에30여명의 회원들과 출국을 앞두고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분주한 상황이었지만, 이번 월간 <차의 세계> 2월호는 ‘하무산과 태고보우 법연 30년’을 특집으로 꾸민 내력을 들었다.
월간<차의 세계> 2월호 특집판에 소개된 2008년 하무산에 한국 동아시아 선학연구소와 중국 묘서진인민정부와 공동으로 한중우의정을 건립하고 ‘태고 보우 현창 기념비’를 세웠다는 기사 내용.
한국불교의 종조가 태고 보우 국사이지만, 법을 이어온 석옥 청공 선사가 주석했던 중국 하무산을 찾는 큰 스님은 안 계셨다.
어느 종단이나 선사 가운데 선 뚯 나서서 태고보우 국사께서 법을 이어온 중국 하무산 석옥 청공선사께서 주석했던 천호암을 쉽게 찾아 나선 분이 없었는데, 여러 가지 제약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신 분이 태고종 종정을 역임하신 안덕암 큰스님이셨다.
최석환 거사는 1996년 여름 안덕암 큰 스님을 모시고 하무산 천호암을 찾았다. “30년 전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고 최거사는 말문을 열었다.
“최근 태고종단에서 늦게나마 하무산을 찾아서 행사를 개최하고 교류를 약속했다는 보도를 보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느꼈다.”는 최거사는 “그러나 조금은 우려스럽다.”고 했다.
“30년 동안 교류해 온 월간 차의 세계 발행인으로서 그동안 중국 정부와의 쌓아 온 신뢰와 정보 등을 감안할 때, 30년간 인연을 맺어온 자신(최거사)과는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진행하는 것을 보고 조금은 놀랐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최거사는 “차차로 알게 되겠지만, 중국과의 문화 교류는 하루아침에 금방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석환 거사는 하무산에 태고 보우 현창 기념비를 세웠는데, 비문 대련에 “태고화상이 삼생의 원력으로 불심종을 빛내시어 다시 오니 하무산에는 중국과 한국의 선풍을 동일한 맥으로 비추시었다〔太古三生 願 光佛宗 再來 霞霧照中韓禪風同一脈〕”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2023년 봄 월간 <차의 세계> 발행인 최석환 회장이 후저우 오흥구를 찾았을 때, 후저우 TV가 취재, 보도하고 있다.
최석환 거사는 “하무산도 한국불교 입장에서는 한국불교의 조정(祖庭)이나 다름없다.
지금도 북한산 태고사에는 태고보우 국사의 탑과 비가 서 있다.
태고보우 선사는 스승인 석옥 청공 선사가 81세에 열반한 후, 스승의 사리를 얻어 귀국하였다고 한다.
한.중 양국의 황금유대를 더하기 위하여 한.중 양국 민간문화메신저를 통해 함께 노력하여 2008년 12월 15일 하무산에 정자를 건립하였다”고 했다.
태고 보우 선사는 중국 하무산에 있는 석옥 청공 선사에게 <태고암가>라는 시를 보여주고 선법을 이어 왔다.
<태고암가>는 모두 82구로 7언이 주조를 이루며, 단을 바꿀 때 6언으로 된 구가 5구가 있다.
이 점은 불교가송의 한 특질이기도 하다. 태고암은 태고 보우 선사의 호로 삼각산에 암자를 짓고 붙인 이름이다. <태고암가>의 내용은 자신이 왜 ‘태고’라는 호를 취하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내 이 암자에 살고 있지만 나도 알지 못해, 깊고깊고 좁고좁지만 옹색함은 없다.
하늘 땅을 덮개 삼아 앞뒤 없으며, 동서남북 어느 한 곳에 머무름 없다[吾住此庵吾莫識 深深密密無壅塞 函蓋乾坤沒向背 不住東西與南北].”로 시작되는 노랫말이 보이듯이 어디에도 매임 없이 초탈한 선사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대 보지 못했나 태고암의 태고스러운 일을, 다만 지금같이 밝고 뚜렷해. 백천 삼매가 이 안에 있어, 인연따라 모든 사물 이롭게 하면서도 항시 적적하다[君不見太古庵中太古事 只這如今明歷歷 百千三昧在其中 利物應緣常寂寂].”로 시작되는 셋째 단락은 태고라는 의미가 시간의 연속이지만 그 시간은 지금의 이 시간에 있다는 시간의 초월상을 말하고 있다.
“모날 수도 있고 둥글 수도 있어, 흐름 따라 구르는 곳 모두가 유현한 진리. 나에게 산속 경치 묻는다면, 솔바람 소슬하고 달은 시내에 가득하다 하리[能其方能其圓 隨流轉處悉幽玄 君若問我山中境 松風蕭瑟月滿川].”라고 한 넷째 단락은 태고암의 주변경관을 서술하되 선사에게 비치는 선경을 서술하여 제목으로서의 태고암을 서경적으로 끝맺었다.
<태고암가>는 태고암이라는 암자의 영물시(詠物詩)처럼 보일 수 있지만 태고암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태고라는 무한의 시간이 지금과 맞닿는 점에서 시간의 초월성을 보이고, 암자라는 좁은 공간에 천지사방을 수용한 공간의 초탈을 의미하였다.
이 점이 이 노래가 가지는 깊은 내용으로 이러한 뛰어난 점은 당시 중국의 명망 높은 승려인 석옥화상(石屋和尙)이 이 노래를 보고 바로 득도의 경지라 탄복하면서, 자신이 계승한 임제정맥을 전법해 준 것이다.
이런 연유에서 한국불교에서는 석옥 청공 선사가 주석했던 중국 하무산을 선종의 중요한 성지로 인정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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