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검스님 불교 칼럼]: 눈 덮인 산사의 적막... 설악산 신흥사설산은 말이 없다. 단지 지켜 볼 뿐이다.
설악산 신흥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이다. 신흥사 한주(閑主) 본연(本然) 선사가 눈 덮인 산사의 모습을 몇 컷 보내 왔다.
얼굴 들어간 사진도 보내 달라 했더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인 여시실상(如是實相) 그대로의 경관을 감상하라고 한다.
실상(實相)은 깊은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제법실상(諸法實相)이란 말에서 온 말이다.
제법실상은 일체 만법의 진실한 체상(體相) 즉, 모든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면모를 의미한다.
《법화경》에서 제법실상은 곧 부처님이 깨달아 성취한 내용을 가리키며 부처가 아닌 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였다. 제법실상은 대승불교와 중국 불교의 모든 종파에서 중요하게 여긴 개념이었다.
정토종에서는 제법실상을 아미타불의 명호라고 하며, 진언종에서는 아자(阿字)가 본래 생겨남 없음이 곧 제법실상이라 하였다. 화엄종에서는 일진법계를 제법실상이라 하였다. 선종에서는 제불(諸佛) 혹은 역대조사들의 오도를 표현하는 본래면목을 제법실상이라고 하였다.
제법(諸法)은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법(진리)을 말하며, 나아가 일체 존재나 일체 현상을 포괄하는 말이다.
실상(實相)은 진실한 체상이나 평등한 실재(實在) 또는 불변의 이치[理] 등의 뜻이다. 초기불교에서 ‘일체법은 오온이다’고 하거나 혹은 십이처·십팔계라고 설하고, 그것은 모두 무상(無常)이며 고(苦)이며 무아(無我)라고 설한다.
이때 오온(五蘊)·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는 곧 ‘제법’이며,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는 ‘실상’에 해당한다.
이렇게 교리를 열거하면 너무 어렵다. 그래서 불교는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용어(用語)나 개념을 알아야 불교에 접근이 가능하다.
선(禪)에서는 이런 교리(敎理)를 던져 버리고 오직 앉아서 벽만 쳐다 본다. 이것을 벽관(壁觀)이라 한다. 본연 선사는 벽관을 하는 수행자이다. 이런 분들을 수좌(首座)라고 부른다.
벽관은 벽과 같이 마음과 몸을 모두 적정(寂靜)하고 부동(不動)하며 굳건하게 머물러 흔들림이 없는 좌선의 관법이다.
달마의 벽관은 승당에서 벽을 바라보고 좌선하는 일종의 수행 방법을 초월하여 깨달음을 드러내는 모습으로도 전개되었다.
달마 대사가 남인도에서 중국에 와보니 불교가 너무 어려워져 있었다. 그래서 가르쳐 준 수행법이 이 벽관 수행이다.
달마의 벽관이 단순한 좌선의 모습만이 아니라 마음에 분별이 발생하지 않는 침묵의 모습으로 드러나 있었던 까닭에 몸은 움직임이 없는 좌선이면서 마음은 성성하게 깨어있는 상태였다.
이는 “달마대사는 숭산의 소림사에서 벽을 마주하여 좌선을 하였는데 하루 종일 침묵을 지켰다.
아무도 그것을 헤아리지 못하여 벽관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 불렀다.”라고 《경덕전등록》이란 책의 <보리달마전>에 기록되어 있다.
달마는 벽관의 수행에 대하여 그 의미를 “밖으로는 모든 반연(攀緣)에 대한 집착을 멈추고 안으로는 마음에 혼란스러움을 없애서 마치 장벽과 같은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곧 깨달음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제자에게 가르쳤는데, 이것이 바로 벽관의 뜻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사진: 본연 선사<설악산 신흥사 한주> 글: 보검 스님<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저작권자 ⓒ 데일리미디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