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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칼럼] 연재: 보검스님의 동서고금의 차 이야기- ⓶ 달마대사와 선 차

보검스님 | 기사입력 2025/10/15 [01:44]

[불교칼럼] 연재: 보검스님의 동서고금의 차 이야기- ⓶ 달마대사와 선 차

보검스님 | 입력 : 2025/10/15 [01:44]

보검스님의 동서고금의 차 이야기- ⓶ 달마대사와 선 차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차의 역사는 수천 년에 걸쳐 여러 문화권에 걸쳐 퍼져 있다. 차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서부와 미얀마 북부의 국경 지대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식물학자들은 인도의 아삼 품종과 중국 품종 사이에 형태적 특성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관찰을 통해 차의 기원에 대한 이원론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서 두 품종 모두 같은 염색체 수를 가지고 있고 서로 쉽게 교배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조사지역은 중국의 운남, 쓰촨성, 버마 북부를 포함한 지역이었다. 차는 이렇게 해서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갔음을 알 수 있다.

 

본문이미지인도네시아 반둥의 차 밭 풍경. 반둥은 서 자바 주의 주도이다. 자바 섬에 위치한 대 반둥(반둥 분지
대도시권) 은 1,100만 명이 넘는 주민이거주하는 이 나라에서 두 번째로 크고 인구가 많은 대도시권이다.
해발 768m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부 지역의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 1,050m이고 남부 지역의 가장 낮은 지점은 해발 675m이다. 반둥은 대부분의 다른 인도네시아 도시보다 일 년 내내 시원한 기온을 유지한다.

 

그러면 차는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는가? 기록상으로 본다면 음차(飮茶) 이른바 ’차 마시기‘에 대한 가장 초기의 기록 중 하나는 중국의 상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商)나라는 은나라 (殷)로도 알려져 있으며, 기원전 2천 년 동안 황하 계곡을 통치한 중국의 왕조로, 전통적으로 하나라를 계승하고 서주 나라가 이어졌다. 상나라에 대한 고전적인 설명은 《서경(書經)》, 《죽록(竹錄)》 《사기(史記)》와 같은 문헌에서 나온다. 현대 학계에서는 상 왕조의 연대를 기원전 16세기에서 11세기 사이로 잡고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차를 언제부터 마셨는가이다. 상나라에서 마셨다는 차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것과 같은 그런 의미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차를 약재로 마셨다는 기록이다. 차를 단순히 기호식품이 아니라 일종의 약으로 마셨는데, 역사상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은 서기 3세기의 의사 화타가 쓴 의학 문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화타(華佗:140 년경 ~208년)의 자(字)는 원화(元華)로, 후한 말기에 살았던 중국의 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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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최초 마취제를

사용한 명의 화타.

 

《삼국지》와 《후한서》와 같은 역사 문헌에 의하면 중국에서 수술할 때 마취제를 사용한 것은 중국인으로서는 화타가 최초라고 기록하고 있다.

 

화타는 ’마비산(麻沸散;대마 끓인 가루)‘ 이라는 약초 혼합물과 와인을 혼합한 전신 마취제를 사용했다. 

 

화타는 수술과 마취 분야의 전문 지식으로 존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침술,뜸,약초 의학 및 의학적 도인(導引) 운동에 대한 능력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호랑이, 사슴, 곰, 원숭이, 학의 움직임을 연구하여 무금희 (五禽戲;오금운동)를 개발했다.

 

 

 

오늘날 차는 동양에서만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즐겨 마시고 있다. 그러면 서양에는 언제 처음으로 차가 알려졌는가이다. 처음으로 서양 세계에 알려진 것은 16세기 초 중국의 포르투갈 사제(司祭)와 상인을 통해서였다. 서양에서 차 마시기는 17세기에 영국에서 인기를 얻었다.

 

중국의 차 독점과 경쟁하기 위해 영국 동인도 회사는 영국령 인도에 상업적 차 생산을 도입했다.

 

 

동인도 회사(1600~1874)는 1600년에 설립되어 1874년에 해산된 영국, 그리고 나중에는 영국의 주식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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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있던 영국 동인도 회사의 본사. 인도양,
동아시아에 대한 모직물 시장 및 향료 획득 등의 독점 무역을 목적으로 세워진 영국의 칙허 회사이다. 잉글랜드 동인도 무역상 연합회사(Governor and Company of Merchants of London Trading into the East Indies (1600년~1708년)로 출발하였고, 나중에는, 영국 동인도회사(United Company of Merchants of England Trading to the East Indies (1708년 ~ 1873년)로 변경했다.

 

이 회사는 인도양 지역에서 처음에는 동인도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와 거래하고 나중에는 동아시아와 거래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 회사는 인도 아대륙의 대부분 과 홍콩을 장악했다. 이 회사는 절정기에 다양한 측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으며 회사의 3개 대통령군이라는 형태로 자체 군대를 보유했는데, 총 병력은 약 260,000명으로 특정 시기에는 영국군의 두 배였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설립된 배경은 1595년 네덜란드가 인도 항로로 진출하여 향료 무역을 본격적으로 개시하자, 이에 자극받은 영국 런던의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1600년에 설립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특허를 얻어 동인도 지역 무역의 독점권을 얻었다. 동인도 회사의 활동 범위는 17세기에는 아프리카에서 일본에까지 미쳤는데, 주요 사업은 향료 무역이었다. 그러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격렬한 투쟁을 벌인 결과 이에 패배하여 17세기 말까지는 인도로 후퇴하게 되어, 봄베이로부터 캘커타에 이르는 서부 인도의 해안선을 지배하에 두었다.

 

영국의 작가 가일스 밀턴(Giles Milton, 1966년-)은 《향료전쟁》에서 이 내용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향료전쟁》은 1600년대 동남아시아의 향료제도를 사이에 두고 영국과 네덜란드가 벌인 치열한 이권 다툼을 담은 책이다. 유명한 뱃사람인 드레이크 제독, 미들턴 제독,나다니엘 제독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국인들은 현재 차(車) 없이는 살아도, 차(茶) 없이는 못 사는 국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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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령 인도정부가 개발하여 만든

스리랑카의 차 농장에서 찻잎을 따는  노동자들.

 

 

동인도 회사는 처음에는 동인도(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와 거래하고 나중에는 동아시아와 거래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 회사는 인도 아대륙의 대부분과 홍콩을 장악했다. 이 회사는 절정기에 다양한 측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으며 회사의 3개 대통령군이라는 형태로 자체 군대를 보유했는데, 총 병력은 약 260,000명으로 특정 시기에는 영국군의 두 배였다.

 

원래 ’동인도에 무역하는 런던 상인의 총독및 회사‘로 설립된 이 회사는 1700년대 중반과 1800년대 초반에 세계 무역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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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의 고향 칸치푸람 불자들과 보검스님이 나그푸르의 딕샤부미 불사리탑 앞에서 기념촬영.이곳에서 1956년 10월 14일 60만 명이 불교도로 개종 선언을 하였다.

 

특히 면, 실크, 남색 염료, 설탕, 소금 ,향신료, 질산 칼륨, 차, 나중에는 아편을 포함한 기본 상품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회사는 또한 인도 아대륙에서 영국령 인도 제국의 시작을 알렸다.

 

이 회사는 결국 군사력을 행사하고 행정 기능을 맡으며 인도 아대륙의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다.

 

1857년 세포이 반란 이후, 1858년 인도 정부법에 따라 영국 왕관은 새로운 영국령 인도 제국의 형태로 현재의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를 직접 통치하게 되었다.

 

영국 제국의 공식 정부 기구는 정부 기능을 맡았고 군대를 흡수했다. 이로써 영국령 인도(식민지)가 시작되었다. 영국령 인도와 차(茶)는 뗄 수 없다. 배경역사 차원에서 동인도 회사를 언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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