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칼럼] 보검스님이 만난 인물: 자운 박금례 시인, 찻집과 포교당 동시 운영수원 화성 창룡문 아래, 미술관도 운영보검스님이 만난 인물: 자운 박금례 시인, 찻집과 포교당 동시 운영 -수원 화성 창룡문 아래, 미술관도 운영-
자운 박금례 시인은 시작(詩作)을 쉼 없이 하는 시인이다.
최근 ‘고추잠자리’와 삼행시 ‘노벨상’을 발표하여 호평을 얻고 있다.
고추 잠자리 자운 박금례
하늘을 날으는 고추 잠자리
고추 잠자리가 높이 날으면 가을이 온다는데
세계문화유산 화성 둘레길에 벌써부터
고추 잠자리가 하늘 높이 날으고 있네
고추 잠자리가 되어 나도 훨훨 날으고 싶네
어지러운 세상에 나도 고추 잠자리가 되어 근심 걱정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네
저녁노을 시원한 바람소리에
고추 잠자리는 더욱 더 신바람이나 춤을 추고 노래 부르네
나도 고추 잠자리가 되어 같이 춤추고 하늘을 날으며 행복했으면 좋겠네
삼행시 노벨상 자운 박금례.
노 :노을이 질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바닷가 깊은 물 속 보다 깊은 사랑
자나깨나 자식 걱정 빵구난 양말 등잔 밑에서 꼬매주시던 우리 어머니 눈물나게 사랑스러워 목이 메입니다
벨:벨소리 종이 울리면 새벽같이 아침식사
준비하시는 우리 어머니 장미꽃보다 아름답고 라일락 꽃 보다 향기가 좋은 우리 어머니 사랑 합니다.
상 :상복이 터저 많은 상을 탄 것도
우리 어머니 큰 사랑 덕분입니다
우리 어머니 하늘만큼 땅만큼 금례가 사랑합니다 우리 어머니 ...
수원화성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장헌세자(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부친 사도세자의 원침(산소)을 수원 화산으로 옮긴 후, 1796년 9월 완공된 성이다.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고을 수령 관아)를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동1포루는 창룡문 남쪽에 있는 치성(성위에 낮게 쌓은 담)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모두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1포루, 동2포루,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자운 박금례시인은 시를 쓰면서 성곽을 매우 사랑하는 문화 지킴이다.
화성은 조선시대 화성유수부 시가지를 둘러싼 성곽이다.
1789년(정조 13) 수원을 팔달산 동쪽 아래로 옮기고, 1794년(정조 18) 축성을 시작해 1796년에 완성했다.
전체 길이는 5.74㎞에 달한다. 4개의 성문을 비롯해 망루의 일종인 공심돈(空心墩), 대포를 둔 포루(砲樓), 요충지에 세운 각루(角樓), 군사지휘소인 장대(將臺) 등을 두루 갖췄다.
화성은 지형을 살려 쌓는 조선의 축성 전통을 따르면서도, 새로운 방어시설을 도입한 성곽이다.
실학자 정약용은 조선과 중국의 축성 방식을 총망라하여 성곽의 규모와 방어시설, 재료를 계획했고, 자재를 쉽게 들어 올리는 거중기와 튼튼한 수레 유형거를 발명하여 공사비용도 줄였다.
축성의 모든 과정은 《화성성역의궤》라는 공사보고서에 꼼꼼하게 기록했다. 건축도면과 축성기계의 그림, 사용한 재료의 치수와 수량까지 수록되어 있어 현재까지도 《화성성역의궤》를 바탕으로 수리 보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화성은 동서양의 기술교류를 보여주고 지형을 살린 우수한 군사건축물로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화성은 성곽뿐 아니라 18세기 말에 만들어진 성곽도시이자 계획 신도시라는 점에서도 큰 가치가 있다. 서울과 삼남지방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에 자리 잡은 화성에는 경제적으로 부강한 도시를 만들고자 했던 정조의 뜻과 실학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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