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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을 찾아서...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불국사 "

528년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발원으로 불국사 창건

데일리미디어뉴스 | 기사입력 2023/03/15 [09:10]

고찰을 찾아서...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불국사 "

528년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발원으로 불국사 창건

데일리미디어뉴스 | 입력 : 2023/03/15 [09:10]

우리 민족문화의 정수로 천년세월 너머 현대의 무지한 중생들에게 불국토의 장엄함과 사모하는 마음 일으켜

 

우리가 흔히 여행을 다니다보면 사찰을 들리는 경우가 흔하다. 가끔은 종소리를 듣기도 하기도 시주도 하고 이어 샘물을 마시기도 한다. 그러나 여행중 지친 몸을 쉬어주는 것에만 그치지 사찰의 역사를 정확히 아는 여행객은 그리 많지 않다.

▲ 사진출처: 국립공원공단    

그런대로 이유들은 다들 있다. 여행목적 지에 빨리 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여행객들이 많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자신들이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 여기에 잠시나마 마음의 편한함을 줬던 공간이 어디인지 조금이나 알아 본다면 여행객들에게는 보람있는 여행의 의미를 가져갈수 있을 것이다.

이에 사찰중 우리의 역사를 대변해주는 불국사에 대해 얼마나 심도 있게 아는 이는 그리 흔치 않다.

 

 

여기에 불국사 역사의 고전에 대해 알아본다.

 

불국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는 서기 528(신라 법흥왕 15)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발원(發願)으로 불국사를 창건하여 574년 진흥왕(眞興王)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부처님(毘盧遮那佛)과 아미타부처님(阿彌陀佛)을 주조해 봉안했고, 670(문무왕 10)에는 무설전(無說殿)을 새로 지어 화엄경(華嚴經)을 강설(講說)하였으며, 그 후 751(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고 했다.

 

 

751년 당시의 재상 김대성에 의해 두 번째 중창이 시작

 

다른 기록인, 불국사 사적(事蹟)에는 이보다 앞선 눌지왕(訥祗王)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고 경덕왕 때 재상(宰相)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3()되었다 했다. 처음에는 소규모로 창립되었던 불국사가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三國遺事)5 <대성효 2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조에는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으며, 김대성이 이 공사를 착공하여 완공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국가에 의하여 완성을 보았으니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당시의 건물들은 대웅전 25,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 극락전 12, 무설전(無說殿) 32, 비로전(毘盧殿) 18칸 등을 비롯하여 무려 80여 종의 건물(2,000)이 있었던 장대한 가람의 모습이었다고 전한다.

 

1593년 왜군에 의해 파괴된 불국사는 1604년 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다시 시작

 

전해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인 고금창기(불국사 창건에 관한 최고의 기록)는 문헌적인 근거가 약해 불국사가 일정 기간에 창건되기 보다는 긴 세월동안 여러세력들에 의해 점차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오늘날의 일반적 견해다.

 

이러한 불국사의 거대가람으로서의 위용은 임진왜란 시기인 15935월 의병과 승군의 활동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왜군의 방화와 파괴등으로 큰 피해를 입어 2,000여 칸의 대가람이 전소되는 고난을 겪게 되었다.

 

이후 전란의 피해가 복구되면서 불국사도 국가의 지원 및 스님과 신도들의 노력에 의해 1604(선조 37)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시작되어 1805(순조 5)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부분적인 중수(重修)가 이루어졌으며 1805년 비로전 중수를 끝으로 중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후 조선 후기 국운(國運)의 쇠퇴와 더불어 사운(寺運)도 쇠퇴하여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도난당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석가탑 해체 복원 작업이 2015년 마무리

 

 

일제강점기인 1924년 대규모의 개수공사를 실시하여 다보탑의 해체보수, 법당의 중수 등을 실시하였는데 이때 다보탑 속에 있던 사리장치(舍利藏置)가 행방불명되었고 공사와중에 유물의 완벽한 복원과 보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일제의 문화정책의 전시물로서 수난을 겪었다.

 

8 ·15광복 후인 1966년 석가탑의 해체복원 등 부분적 보수가 있었다가 1969년 불국사 복원위원회가 구성되고 19702월 공사에 착수, 19736월 대역사(大役事)를 끝마쳤다. 이 공사로 주춧돌과 빈터만 남아 있던 무설전 · 관음전 · 비로전 · 경루(經樓) · 회랑(廻廊) 등이 복원되었고, 대웅전 · 극락전 · 범영루(泛影樓) · 자하문(紫霞門) 등이 새롭게 단장되었다.

 

200812월에서 200912월까지 다보탑 해체 수리작업이 있었고 2012년부터 2015년 석가탑 해체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사리장엄구가 재봉안 되기도 했다.<출처: 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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