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립미술관(GAM)은 경남 통영 출신의 조각가 심문섭(1943~ )의 60년 예술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심문섭: 시간의 항해》를 2023년 3월 17일부터 6월 25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 1·2층 전관에서 개최한다.
《심문섭: 시간의 항해》는 심문섭이 60여 년 전 뱃길을 따라 시작했던 오랜 예술항해 중 고향 경남에서 처음으로 닻을 내리는 대형 회고전이다. 1970년대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던 그의 초기 실험 작품부터 각 시기를 대표하는 조각, 드로잉 그리고 2004년부터 현재까지 몰입 중인 회화 연작에 이르기까지 약 200여 점에 달하는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를 집중 조명한다. 이 중에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미발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작가는 조각, 설치, 사진, 사진드로잉,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와 재료를 아우르며 장르의 카테고리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작업에 있어 일관되고 뚜렷한 방향성을 유지해왔다. 심문섭의 초기 조각 작품은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미니멀리즘(Minimalism) 일본 모노하(物派, Mono-ha)와의 영향관계 속에서 논의되기도 하지만, 국제적 감각과 시대상을 공유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를 투영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태어나고 자란 경남 통영의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환경은 작가의 자연관에 큰 영향을 미치며 몸속 깊이 각인되어 현재까지도 작업의 원천이 되고 있다.
심문섭은 “조각가로서 조각이라는 매체 고유의 고정관념에 반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였고 이를 자신의 주요한 조형의 지표로 삼아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전시 제목 ‘시간의 항해’는 작가의 작품에 공통으로 내재된 시간성과 장소성, 진행형의 복합적인 작업 형식을 뜻하기도 하지만, 바다를 중심에 둔 채 결코 한곳에 정박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운 의미의 흐름을 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작가의 작업 태도를 함축한다. 심문섭은 완결된 오브제의 형상이 아닌 물질의 시간성을 내포하는 과정으로서의 작업을 추구하며 미지의 열린 세계를 지향해 왔다. 관람객 역시 시간 여행자가 되어 작가의 예술항해를 가로질러 그 시적 만남에 동참하길 기대한다.
전시는 1, 2층 전시장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심문섭의 ‘반(反)조각’을 향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작업 여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각 섹션 주제는 전체 작업을 관통하는 몇 가지 주요한 키워드를 기반으로 설정하였다. 이는 어느 한 시기의 특징에 국한되지 않고 전 작업의 궤적을 아울러 적용되는 것이기에 작품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섹션 1. 장(場)을 열다: 관계에서 제시로는 작가의 첫 시리즈 관계(1970-1980)에서 현전(1973-1990년대), 목신(1982-1995), 토상(1981-2009)을 거쳐 제시(2000-2007), 반추(2002- ) 시리즈의 대표작을 선보인다. 이 중에는 2000년대 조각과 근작 회화도 포함되었다. 이를 통해 심문섭이 동시대 국제미술의 흐름을 빠르게 받아들여 전통적인 형태의 조각에서 벗어나 물질, 재료, 개념, 상황적 조각을 추구하며 조각의 영역을 새롭게 확장해 나갔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섹션 2. 자연의 감각: 무한의 질서에서는 자연이 주는 원초적 소재인 흙(점토)으로 만든 토상(1981-2009) 시리즈의 다양한 변주와 회화 작품을 소개한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고 자란 심문섭에게 아름다운 통영의 바다와 자연환경은 그의 자연관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작업 전반에 투영되었다. 그는 돌, 나무, 흙과 같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재료를 사용하면서 작가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하여 그 물질 자체의 본성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한다. 심문섭의 작품은 원초적인 자연재료 속에 잠재해 있는 무한히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를 품고 있다.
섹션 3. 반(反)조각의 확장: 물성에서 회화까지는 심문섭의 조형관이 잘 나타난 메타포(1992-2008), 현전(1970-1990년대), 반추(2002- ) 시리즈의 대표작과 최근까지 몰입하고 있는 제시–섬으로(2004- ) 회화 연작을 중점적으로 선보인다. ‘조각은 물질의 예술이며, 세상 모든 것이 조각의 재료가 된다’라고 말하는 작가에게 조각, 설치, 회화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2000년대 이후 심문섭의 작품에는 물, 바람, 빛과 같은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였는데, 통영의 바다를 모티프로 한 푸른색 회화 역시 ‘반(反)조각’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섹션 4. 아카이브 공간에서는 작가의 작품세계에 보다 면밀히 다가설 수 있도록 작가연보를 비롯한 다양한 기록물과 자료들, 드로잉 작품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특히 모든 전시장에서 조각과 어우러진 회화 연작을 감상할 수 있는데, ‘반(反)조각’ 정신의 확장 개념으로써 조각과의 상관관계를 짚어보는 데 의미가 있다.
전시를 기획한 박현희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조각의 경향을 주도했던 작가, 심문섭의 예술 행적이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며 반영, 전개되어왔는지를 살펴보고 그 의미와 가치를 다시 심도 있게 바라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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