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오산 이강 선생 유품 <설니홍조(雪泥鴻爪)> 첫 공개이강 선생의 중국인 제자와 지인들이 보낸 헌사를 적은 두 권의 공책
|
평안북도 용강 출신의 이강 선생(1878~1964)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러시아 연해주, 만주와 중국 등지를 다니며 <공립신보> 주필, <대동공보> 편집책임을 맡는 등 항일 언론 활동을 전개했으며,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계획과 실행을 돕기도 했다. 1919년 강우규 의사의 폭탄 투척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과 부의장을 거쳐 1927년 의장직을 맡았다.
이후 흥사단 원동지부원으로 참여한 후 남중국 방면을 여행하던 중 1928년, 중국인 교회에서 강연하다 체포되어 다시 옥고를 치렀으며, 1930년 만기 출옥 후 고향 용강을 거쳐 중국 푸젠성 취안저우에 정착하며 중국인 제자들을 양성하고, 1941년 한국광복군 수립 후 광복군 모병활동을 하다 광복을 맞이했다.
이번에 공개된 <설니홍조(雪泥鴻爪)>는 이강 선생의 중국인 제자와 지인들이 보낸 헌사를 적은 두 권의 공책(노트)이다. 이강 선생은 1944년 푸젠성 취안저우를 떠나며 1권에 쓴 서언을 통해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활동을 돌아보면서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제자와 지인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그들과의 기억을 평생 잊지 않으려는 생각에서 기념책을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설니홍조>는 중국인 제자들의 이강 선생에 대한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와 함께 지인들과의 이별의 아픔을 담은 책이라 할 수 있다.
1권은 1947년 타이완에서 국내로 귀국하기 전까지 중국 체류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며, 선생을 포함한 73명의 제자들이 쓴 글귀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쓰여진 중국인 제자들의 글은 머나먼 타지에서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독립을 위해 활약했던 이강 선생에 대한 존경심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이강 선생의 중국인 제자 리이(李毅)는 “굳은 의지와 고된 투쟁 속에 인생은 얼마나 위대한가. 오산 선생님, 당신을 깊이 존경합니다”라고 썼다.
2권은 이강 선생이 백범 김구 선생과 성재 이시영 선생 등 6인에게 귀감이 되는 글귀를 요청하여 쓰여진 것으로, 김구 선생은 중국 송대 문장가 범준(範浚)의 문집에 실린 글을 옮겨 적었고, 이시영 선생은 “군자는 덕으로써 사람을 사랑하며 스스로를 기만하거나 남을 속이지 않는다”라고 썼다. 2권 마지막 부분에는 이강 선생이 쓴 국한문과 영문 이력서도 실려 있다.
김희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장은 “오산 이강 선생은 한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임시의정원 의장을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이라고 강조하면서, “앞으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숨은 독립운동가를 적극 발굴하여 국민들에게 알림으로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과 가치를 함께 공유하고, 확산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