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어 ‘구름’은 영어 ‘클라우드’의 음운구조와 유사할까? 왜 한국어 ‘까마귀’는 영어 ‘크로우’나 일본어 ‘가라스’ 음운과 다른 유형의 음운구조일까? 왜 한국어 ‘두루미’와 일본어 ‘츠루(투루)’, 우크라이나어 ‘주라벨’은 큰 대(大) 자가 긴 목을 돌린 갑골문 열(夨) 자의 조구된 상고음과 흡사할까?
이러한 해묵은 지적 갈증을 적셔줄 주장이 신간 도서(유라시아 엔드게임3편: 가믄의 비밀, 강성운)'에 제기되었다.
특기할 점은 고대 문자 창조 당시의 음운에 착안한 점이다. 저자는 문자 기록만으로 한정했을 때 역사는 3~4천 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는 인류의 위대한 여정을 밝히는데 있어 매우 짧으므로 음운을 통한 보완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대표적 예가 ‘감’이나 ‘가마’ 계통 음운을 묶거나 감긴 형상을 뜻하는 한국어 동사 ‘감다’와 실제 감긴 형상을 나타낸 갑골문 당시의 현(玄)이나 신(申) 자와의 접점을 찾는 식이다. 저자는 초월적 존재인 신(神)의 본자가 신(申)이었고 두 글자의 갑골문 모두 감은 형상이므로 갑골문을 만든 부족은 신성을 뜻할 때 감은 형상을 뜻하는 ‘감’ 계통 음운을 썼다고 논증한다.
이는 감, 검, 곰, 고마 등의 음운을 군장이나 수도의 뜻으로 썼던 고대 한국어나, 가미(神), 가미(上), 기미(君), 기미(公) 등 현재도 같은 뜻으로 쓰는 일본어를 따져볼 때 귀가 솔깃해지는 얘기다. 같은 논거로 경주 감은사(感恩寺)는 이 신성을 뜻하는 ‘감’ 계통 음운을 가차한 것으로, 문무왕은 수중릉이 아닌 감은사 3층 석탑에 화장 후 안치되었다고 단언한다.
저자의 논증대로라면 그동안 한국인들은 문무왕 유해가 없는 수중릉을 발굴해온 것이다. 과연 이 주장이 타당할까? 이에 대해 저자는 “수중릉은 신라인들이 남긴 일종의 디코이”라며, “만약 사서에 사실대로 썼다면 몽고나 왜군 침입 시 온전치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감은사 3층 석탑에서 사리가 발굴되었고, 사리장엄구는 현재 용산 국립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저자는 유라시아 엔드게임1편: 끊어진 그래프, 유라시아 엔드게임2편: 지상 최대의 퍼즐 등을 출간한 바 있다. 이 책들은 한반도나 극동을 넘어 유라시아 단위로 시야를 넓혀 한국인의 원류를 파악하고 있다. 도쿄대 법학부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거쳐 동서양에 걸친 저자의 시야와 어학적 배경을 참고하면, 책장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저자는 "비단 고대사뿐 아니라 그동안 발굴조사를 통해서도 허탕을 친 바 있는 신라 문무왕 유해의 소재지는 물론, 현재 인류 다수가 공유하는 서수 체계 해독을 통해 고대 동서양의 인적 교류를 유추하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며 "아울러 음운 기호, 문자 기호 등 분석 범위를 넓혀 미력하나마 공공지성에 기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미디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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